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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택의 펜화기행] 영천 만불사 황동 와불 열반상 [중앙일보] 2009-02-11 / 4346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시작한 지 45년이 되던 해 석가모니는 쿠시나가라의 사라나무숲을 열반(涅槃)의 터로 삼습니다. 석가모니가 사라나무 아래에 누워 명상에 들자 사라나무는 계절이 아닌데도 수많은 꽃을 피워 부처에 대한 경의를 표합니다. 석가모니는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모여서 이루어진 모든 것은 반드시 흩어지게 돼 있다. 열심히 정진하라”는 말씀을 끝으로 80세의 생을 마감합니다. 뒤늦게 도착한 수제자 가섭존자가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을 애통해하자 이중으로 짠 관 속에서 석가모니의 두 발이 밖으로 나옵니다. 부처의 진정한 법신(法身)은 삶과 죽음이 따로 없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석가모니의 다비식 후 수습된 사리를 8개국에서 나누어 가서 8개의 탑묘를 세웠고, 사리 분배 요청이 늦은 필발촌 사람들은 남은 재로 탑을 세웠으며, 사리 분배를 맡았던 바라문은 사리를 담았던 병으로 탑을 세웁니다. 이 사리들은 훗날 이리저리 흩어져 전 세계에 수많은 사리탑이 됩니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만불사에 세계 최초로 황동으로 만든 석가모니의 열반상이 있습니다. 길이 13m, 높이 4m로 국내에서 가장 큽니다. 열반상 아래 일반 대중을 위한 석조 부도들이 늘어선 모습이 부처님의 보호를 받는 듯 평온해 보입니다.

불교에서 화장을 하는 것은 시신을 영혼이 잠시 입었던 옷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수십만 번 이상 윤회를 한다니 수없이 갈아입은 옷 중의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스님이 입적하면 모두 부도를 세우는 것으로 잘못 아시는 분들이 있으나 고려 때까지는 국사를 지낸 큰 스님의 부도만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인을 모시는 예절이 대단하여 화장을 지낸 유골도 제대로 모셔야 마음이 놓입니다. 이래서 장묘 문화 개선이 어려운가 봅니다.

김영택


<출처 : 중앙일보>
[위 기사는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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